6월의 뱀 (A Snake Of June, 六月の蛇, 2002)
에덴동산 이후로 뱀은 악, 부정한 것, 요물 등의 이미지로 사람들에게 각인되어져 왔다. 뱀의 그 미끈한 비늘과 몸놀림을 보자면 흡사 여자의 몸짓, 그것을 보는 듯하다. 꺽임없이 흐느적 거리는 그 유연한 몸짓. 그런데 왜 하필 6월의 뱀인가?
6월은 일본과 우리나라에 오호츠크해기단과 남태평양기단이 만나 생기는 장마철이다. 장마철. 쉴새없이 내리는 비의 비릿함과 눅눅함, 그리고 그와는 어울리지 않을것만 같은 무더움 사이로 흐르는 끈적한 땀. 그게 바로 6월이다.
심리치료센터의 전화상담원인 린코는 중년의 셀러리맨인 시게히코와 고요하고 풍족한 삶을 사는 여자. 하지만 겉보기와 달리, 지독한 결벽증인 남편과는 부부관계조차 갖지 않는 푸석푸석하고 무미건조한 부부.
이러한 생활로 살아가는 린코는 어느날 '남편에게는 비밀'이라고 적힌 우편물을 받게 된다. 이 우편물 속에는 그녀가 남몰래 하던 자위행위가 찍힌 사진이 들어 있었다. 두려움과 수치심에 사로잡힌 그녀에게 도착한 또 다른 우편물에는 짙은 화장과 화려한 몸놀림, 그리고 역시 자위행위를 하는 그녀가 찍힌 사진과 전화기가 들어 있었다.
때마침 울리는 전화기 건너의 목소리는 자신이 시키는대로 하면 사진과 필름을 준다고 한다. 전화기 속의 목소리는 그녀에게 짧은 미니스커트를 속옷도 입지 않은채 입고서 백화점을 거닐게 하거나, 여성용 자위기구를 사게 하여 그걸 여자 몸 속에 삽입한 채로 여자에게 곤욕스러움을 주는 등의 행위를 시키고, 린코는 오직 그 사진과 필름을 받기 위해 그가 시키는대로 수치심을 억누르고 하게 된다.
린코는 결국 필름과 사진을 건네받게 된다. 하지만 전화기 건너의 목소리가 시키던 행동들이 그녀 안에 잠재되어 있던 관능을 깨우게 된다.
그녀는 결국 스스로 자위기구를 사용하여 공중화장실에서 자위를 한다.
남편 시케히코는 어느날, 우연히 사진 한 장을 보게 되는데 그 사진 속에는 언제나 조용하고 조신하던 린코의 자위하는 모습이 담겨져 있었다. 충격을 받은 시케히코.
알지 못하는 곳에 끌려가 기괴하고 환상적인 경험을 한 후, 혼란에 휩싸이고 결국 린코의 뒤를 미행한다.
린코는 이제 더이상 이전의 린코가 아니였다. 전화기 속의 목소리가 시키던 일련의 행동들을 수치심과 두려움에 떨며 하던 그녀가 아니였다. 그녀는 이제, 자연스레 속옷을 입지 않고서 짧은 미니스커트를 입고 당당히 백화점을 돌아다니며 공중화장실에서 자위기구로 자위를 하며 심지어 사람들이 지나가는 대로변 골목에서도 과감하게 자위를 하게 된다.
린코를 뒤쫓던 시케히코는 외진 공터에 있는 그녀와, 급히 다가와 멈춰선 자동차를 몰래 보게 된다. 자동차가 멈추자 마자 린코는 어김없이 손에 쥐어진 자위기구의 리모컨을 켜고 온몸으로 욕망을 발산하게 된다. 자동차에선 쉴새없이 플래쉬가 터지고 린코의 관능적인 몸짓에 시케히코도 자위를 하게 된다.
빗 속에서 옷을 다 벗어 던지고 마음껏 감각과 쾌락에 빠져드는 린코의 몸짓은 추하거나 천박하게 보이는게 아니라 한마리 자유로운 새의 움직임과 같다.
무미건조하고 삶의 낙이 없는, 마른 나엽처럼 푸석푸석한 대지에 단비가 내리듯이 그녀의 몸짓은 생기 넘치고 자유롭고, 그리고 아름답다.
그래, 그건 새가 아니다. 물 속을 자유로이 유영하는 한마리 물뱀같은...
어쩌면 시케히코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대표적인 남성상인지도 모른다.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권위적이고 단단해진 불쌍한 인간의 모습. 그런 모습은 결병증이라는 병에서도 잘 나타난다. 완벽한 깨끗함, 단정함. 그리고 그 속에 있는 슬픔... 그렇게 매마르고 단단한 껍질 속에 갖힌채 소통하는 법을 잊은 인간. 늘 많은 사람과 부대끼며 살아가면서도 정작 그들과 진정한 소통은 모른채, 가장 가까운 사람과의 소통하는 방법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무시했는지도. 빗 속에서 자위하는 린코를 보며 역시 자위하는 시케히코의 모습이 측은해 보이는 것은 지금까지 갇혀 지낸, 단단하고 매마르고 의미없는 껍질을 벗는 자유의 몸짓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린코는 남몰래 하던 자신의 은밀한 몸짓, 그 행위가 찍혔다는 사실에 두려워하고 수치스럽고 치욕감을 느꼈지만, 빗 속에서의 린코는 더 이상 자신을 감추지 않는다. 자신 안에 잠재되어 있던 욕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만큼 자신에게 큰 자유를 준다. 더 이상 린코는 카메라를 피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는 자신있는 모습으로 그녀의 자유의 몸짓과 알몸을 당당하게 카메라에 맡긴다.
자신있게 보여줄 수 있다는 것. 이는 비단, 욕망이란 것에 국한 되는 것은 아니다. 자아, 마음의 상처, 감추고 싶고 부정하고 싶은 모습까지 모두 포함한다. 린코는 유방암에 걸려 한 쪽 유방을 절단할려고 한다. 그러나 시케히코는 유방 한 쪽이 없어진다는, 권위적인 남성의 미의 기준에 걸리는 행위를 부정한다. 하지만 그런 시케히코 역시 그 비내리는 밤, 스스로의 껍질을 깨고, 진정으로 중요한 것을 느끼게 된다. 그리하여 진정으로 린코와 관계를 가질 때, 절단된 그녀의 한 쪽 유방에 입을 맞춘다.
단절된 채, 자신만의 매마른 껍질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비는 그 껍질을 약하게 하여 깨버리게 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된다. 시케히코와 린코가 진정으로 부부로써의 소통하는 법을 행할 때, 그들의 모습이 아름답게 보일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그들이 자유로워지고 그들의 영혼이 촉촉해 졌기 때문이겠지?
6월의 빗 속에서 허물을 벗어 던지는 뱀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