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의 묵시록 (Apocalypse Now, 1979)
이런 오래된 영화의 기억은 분명 봤을텐데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물론 그 가물가물한 기억은 이리저리 짜집기한 TV판이겠지만. 솔직히 언제 다시 보겠다는 생각조차 없던 영화였다. 그 유명새에 비해 그다지 끌린다는 느낌이 없었다.
단지 내가 이 영화를 보게 된 것은 Doors의 'The End'를 들으며 이 음악에 대해 이것저것 찾아보다가 이 영화에 사용되었다는 것을 알고 보게 된 것이다.
월남전하면 무엇보다 어린 시절에 보았던 '머나먼 정글'이란 홈 드라마가 생각나고 당연 그 주제곡으로 쓰인 Rolling Stones의 'Paint It Black'은 월남전에서 생사를 걸고 싸우는 용맹스런 군인의 이미지 그 자체였다. 서정적이면서도 역동적인 그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앤더슨 상사처럼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꿋꿋이 싸우는 군인의 이상적인 모습이 떠오으며 월남전은 바로 그렇게 M16과 더불어 기억되고 있었다. 뭐, 이런 낭만적(?)인 감상도 오래가진 않았지만 말이다.
The End_Doors, The_The Doors(1967)_Apocalypse Now Opening
Doors의 이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우리가 조금이나마 알고 있다고 믿고 있는, 선과 악도 없고 옳고 그름도 없고 명분조차 없이 꼭두각시처럼 싸울 수 밖에 없는 현실에 처해야했던 그들의 심정이 아주 조금이나마 느껴지는 것 같다. 적어도 'Paint It Black'보다는 말이다. (물론 그렇다고 'Paint It Black'이 좋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허무한 선율과 함께 울리는 짐 모리슨의 목소리, 그리고 화염에 잠기는 정글의 모습으로 시작되는 이 영화는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이 1979년에 제작한 영화이다. 군을 이탈하고 독단적으로 군대를 조직하여 정글에 은둔하고 있는 커츠 대령을 사살하기 위해 그를 찾아가는 윌라드 대위가 그 여정 속에서 월남전의 또 다른 모습(혹은 진실이라 불릴 수도 있는)을 마주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쟁의 명분과는 너무나 다르게 광기에 찬 모습으로 변해가는 군인도 만나며 전쟁의 구조적인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플레이 걸들과의 만남, 전쟁의 기원을 파헤치는 프랑스인 지주와의 만남, 그리고 커츠 대령, 이렇게 전쟁의 피해자들을 대표하는 캐릭터들 속에서 영화를 보는 사람들도 다시금 전쟁의 허무함을 느끼게 된다.
가장 인상적인 대사는 아무래도 역시 커츠 대령이 죽어가며 읊조리던 '공포'가 아닐까? 영화는 전쟁을 여러가지 이미지로 보여주지만 저 단어만큼 확실한 것도 없는 것 같다. 이 영화 뿐만 아니라 다른 전쟁영화를 봐도 역시 마지막에 떠오르는 말은 저 말 밖에 없어.
3시간 정도되는 시간에 말론 브란도가 나오는 시간은 30분 정도지만 그 정도면 그의 카리스마를 보여주는데는 충분하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무언가 불안한 듯한 표정을 보여주는 마틴 쉰도 멋진 연기를 보여주었다.
그러고 보니 요즘 전쟁영화가 땡기는 것 같기도 하다. 얼마 전엔 'Band Of Brothers'시리즈를 봤고 '지옥의 묵시록'도 보고 말이다. 또 다른 전쟁영화를 더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