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x Feet Under S1] 기도문
Lord bring peace to them in their grief...하느님을 믿는건 아니지만, 그래서 기도 같은걸 하진 않지만,
...as you have in ours....우리에게 주신 것처럼 주님께서 슬픔 가운데 평화를 주시길 원합니다.
Six Feet Under season 1 ep 4 'Familia'
가끔 괜찮은 기도문을 보면 여러번 되뇌이곤 한다.
'슬픔 가운데 평화를 주시길' 이 문구가 참 마음에 들었다.
주여 진실하게 하소서중학생 때 3년 동안 좋아했던 여자애가 있었다. 그애는 상당히 도도한 애였고 난 정말로 숫기가 없는 애였다.
오늘 하루하루 순간을
주가 주신 힘으로 승리하기를 원하네
주여 나를 진실하게 하소서
한마디로 친해지기 불가능한 경우였었다.
중 2 겨울로 기억한다.
크리스마스가 다가 올 때였는데 선물을 할까말까 고민하는 참에 한 친구가 선물하라고 해서 털장갑을 샀었다.
물론 그 도도한 애한테 선물 같은걸 받고 싶다는 기대 따위는 전혀 하지 않았었다.
그애를 만날 수 있던 곳은 학원 밖에 없었다. 선물을 준비하고 학원 수업이 끝난 후 선물을 줬다.
그리고 그 다음 날인지 몇일 후인지 자세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애한테 선물을 받았었다.
편지랑 그애 사진이 꽂혀 있던 '갈매기의 꿈'이라는 책이였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책 중에 제일 아끼는 거라며 새 책은 아니더라도 잘 읽으라고 하더라. 그 책 속표지에 저 기도문구가 있었다.
기도 다운 기도문은 저게 태어나서 처음 본 거였는데 상당히 오래동안 보곤 했었던 걸로 기억한다.
사진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지만(한동안 늘 지니고 있었는데 아마 그애가 보냈던 편지 속에 있지 싶다) 책은 아직도 그 포장지도 그대로인 채 있다.
물론 새책을 받는 것보다도 훨씬 기분 좋은 선물이었다.
93년도에 받은 책이었으니 지금 잠깐 보니 종이가 조금 바랬더라. 하지만 그때 기분은 아직 생생하다.
그 겨울부터 중 3 내내 상당히 즐겁게 지냈던거로 기억한다.
그 도도했던 애가 발렌타인 데이 때 초콜렛을 줬을 때는 정말 쓰러지는 줄 알았다.
그 해엔 편지도 정말 많이 주고 받았고, 우리 학교 옆으로 걔네 학교가 소풍을 가며 지나간 적이 있었는데 담벼락에 기대에 내가 불렀을 때 웃으면서 돌아보던 모습은 지금도 눈부시다. 그 많은 애들 중에서 굳이 찾으려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그 땐 더 눈부셨겠지?
3년 동안 혼자서 좋아하며 맘고생도 꽤나 했었는데 그런건 아무 것도 아닐 만큼 마지막 1년은 정말 즐거웠었던 거로 기억한다.
요즘엔 그때 일 생각한 적 없었는데 간만에 즐거운 거 기억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