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Black, 2005)
부끄러운 일인가? 난 솔직히 부끄럽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어떤 사람들은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난 지금까지 헬렌 켈러Helen Adams Keller의 위인전이나 전기를 한번도 읽은 적이 없다. 그녀가 장애를 딛고 살아갔다는 이야기 정도만 알고 있을 뿐이지 자세한 이야기는 잘 모른다.
어릴 적에는 남들이 읽는다고 하면 한번 쯤은 읽어볼 만도 한데 그래도 읽어보지 않았다. 책을 살 수 없을 정도로 집이 어렵거나 했던게 아니다. 오히려 안 읽은 책이 더 많을 정도로 책도 많았다. 단지 꼬맹이 적의 나의 관심사가 다른 쪽에 있었을 뿐이다.
어쨌거나 미셀도 헬렌 켈러처럼 듣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는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다. 다행(?)히 꽤나 유복한 부모님 덕에 장애를 가진 애들을 전문적으로 교육시키는 데브자이라는 선생을 집으로 데려와 거의 마지막 심정으로 미셀을 맡기게 된다.
어린 시절 장애를 가진 동생을 절대 포기하지 않다던 어머니가 직접 그 동생을 수용소로 보낸 것에 충격 받아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스스로 자립하도록 때로는 극단적인 방법까지 쓰는 데브자이는, 미셀 역시 이제 막 태어난 야생동물(?)처럼 거칠고 천방지축이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결국 그녀가 세상에 적응하고 살아갈 수 있게 도와준다.
어떻게 보면 심한 장애를 가진 미셀이 스스로 세상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성장 드라마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성장 드라마라고 하기 보다는 데브자이와 미셀의 우정과 관계에 대한 이야기라고 하는게 맞는거 같다.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데브자이를 찾아 결국 그에게 잃어버린 기억과 꿈을 찾게 하는 것과 데브자이의 집착에 가까운 모습으로 미셀을 세상에 나서게 하는 것 등, 둘의 관계는 흔한 말로 이미 그렇게 되도록 결정되어진 운명이라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그런지 그런 관계 때문에 미셀이 자립하는 모습이 조금 덮히는 감도 있었다. 뭐, 중점을 둔게 관계였으니 그렇겠지.
예전에 대학교 입학하고 오리엔테이션 기간 중에 장애시설에 방문하여 봉사활동하는 것이 있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그렇게 가까이서 장애를 가진 친구들을 접했다. 처음에는 걔네들의 행동과 모습에 적응하기가 힘들었는데 몇 시간 지나니 그런 행동들 자체가 걔네들의 감정 표현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그러니까 좀 편해지더라. 그래서 미셀이 어떤 행동을 하든지 다 받이들이고 기다리는 데브자이의 모습이 조금은 이해가 가기도 했다.
인도 영화라고 하면 왠지 모르게 아직은 크게 와닿지 않는 것 같다는 느낌이 있지만 이 영화는 영상도 아름답고 내용도 눈물 쏙 뽑아내는 것이여서 크게 거부감이 들지는 않는다. 그냥 감정의 전개가 조금은 익숙하지 않다는 정도?
발리우드에서 '살아 있는 전설'이라고 불린다는, 데브자이 역을 연기한 아미타브 바흐찬Amitabh Bachchan의 눈빛이 마음에 들었다. 인도 사람의 그 깊고 큰 눈망울이 가끔 거북할 때가 있는데 이 아저씨는 그렇지가 않더라. 내 생각엔 조금 오버하는 연기도 있는 거 같았지만 그래도 전혀 어색함이 없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어린 미셀 역을 맡은 아예샤 카푸르Ayesha Kapoor의 연기는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장애를 가진 모습을 연기하기 힘들었을 텐데 정말 진짜인 것처럼 잘 하더라.
인도에서는 난리가 났던 영화였단다. 상도 많이 받은거 같던데. 평소 접하기 쉽지 않은 인도 영화치고는 꽤나 좋은 영화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