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성(哭聲) (THE WAILING, 2016)
영화를 보고 나서 처음 든 느낌은 아무 그림도 그려져 있지 않는 직소퍼즐을 받은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완성된 그림 자체 보다는 이 퍼즐들을 어떻게 맞춰야 하는지가 더 궁금하죠. 곡성에 대한 기사와 추측과, 그리고 직접 마주하게 되었었을 때의 느낌이 이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더 가관인 것은 이 아무 것도 그려지지 않은 곳에 내가 얼마든지 그림을 그려 넣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우리는 갑의 입장에서 편안하게 영화를 즐기고 싶지만, 이 영화는 관객을 을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럼에도 이러한 상황에 대해 불만을 가지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을 보면 평범한 영화가 아닌 것 만큼은 분명한거 같습니다.
또 어떻게 보면 나름 친절한 영화일 수도 있습니다. 현혹되지 말라. 미끼를 물었다고 했으니 조심하라. 의심하지 말라. 이런 주의사항을 친절하게 알려 주고 시작을 했으니까요. 아, 어쩌면 그게 더 관객을 농락시키려는 첫번째 방법이었을 수도 있겠네요.
지키고 빼앗으려는 선과 악의 대결 속에 내팽개쳐진 약한 인간의 모습을 그립니다. 처절하게 사실적이죠. 희망과 바람이 아니라 '사실'을 보여 줍니다. 어쩌면 지루하기 짝이 없는 이 고리타분한 주제 속에서 감독은 진득한 질문을 관객에게 던집니다. 누가, 왜 그랬을까요? 이때부터 사람들은 점점 의심을 하게 되는 것이지요. 자기도 모르게 나락으로 휩쓸려 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말 밖에는 나오지 않는 기가 막힌 상황이 연속됩니다.
극단적인 감정을 묘사하는 고전 호러물의 분위기를 아주 고급스럽게 다듬은거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장엄하면서도 평범하지만 막연하고 불안함이 화면 곳곳에 살아 있었습니다. 장소에서 부터 작은 소품과 분위기까지 뭔가 익숙하면서도 낯설은 이질감이 느껴져 신선했습니다.
장면 장면마다 본인에게 기대하는 역할의 강약을 잘 조절한 배우들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어느 한 인물도 허투루 낭비되는 장면이 없었던거 같았습니다. 특정 배우를 지칭하기 보다는 모든 배우들이 안정감이 있어 내용과는 별개로 연기를 보는 것이 편했습니다.
무엇보다 현실에서는 접하기 힘든 내용을 현실이라는 공간에서 풀어내려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장면 장면들은 어떤 순간에는 레버넌트의 느낌을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개봉 전부터 쏟아지던 찬사를 고스란히 받을 만한가는 좀 더 생각을 해야 할거 같습니다. 기대치가 너무 커서인지 실제 영화를 보고 나서는, 흠 잡을 곳 없이 상당히 매끈한 영화라는 인상을 받았음에도 뭔가 아쉬운 감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 매끄러운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온 느낌이랄까요.
그럼에도 이야기를 풀어서 다시 회수하는 과정을 뻔하지 않게 그려낸 것을 보면서 감독의 고집이 대단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지금 받고 있는 많은 찬사를 끄집어 낼 자격이 충분한거 같습니다.
사실 이 영화는 감상하기 편한 건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그 커다란 기대치만큼이나 생산된 다양한 의견들로 인해 온전히 스스로 관람하기가 어려운 상황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꼭 봐야 할 한국 영화 중에 하나로 계속 회자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앞으로도 보는 사람들에게 수많은 질문을 던져 을로 만들어 버리는 보기 드문 영화니까요.
사진_곡성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