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 포레스트 (Little Forest, 2018)
간만에 마음 푸근해지고 뭔가 힐링이 되는 듯한 영화를 봤습니다. 사실 이 영화는 사전 정보 없이 봤는데, 생각보다 만족했습니다. 원작이 일본 만화여서인지 어딘가 모르게 일본 영화의 느낌이 나다가도 10분 정도만 차를 타고 가면 어디에서도 볼 수 있는 듯한 풍경이 익숙해서 좋았습니다.
하염없이 눈이 내리는 겨울날, 임용고시에서 떨어진 혜원은 아무도 없는 어릴 적 살던 시골 집으로 오게 됩니다. 잠시 머물다가 갈 생각으로 왔지만 예전 친구 재하, 은숙과 만나면서 4계절을 보내고, 그 과정 속에서 예전에, 그리고 지금 마음 속에 있던 상처와 굴레를 벗어 던지게 됩니다.
한없이 청명한 김태리의 모습과 어딘지 모르게 구수함이 느껴지는 류준열의 모습에서 돈 많이 들인 블럭버스터나 심각한 감동을 주는 영화는 아닐거라 생각했고 그냥 가볍게 보면 될거라 생각을 했었습니다. 생각대로 가벼운 영화였습니다. 아니 가볍다기 보다는 은근히 오래 향기가 느껴지기도 하고 잔잔한 물결이 조용히 멀리 퍼져 나가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게 되는 그런 느낌의 영화였습니다.
영화 내내 보여주는 혜원이 살던 동네의 4계절 모습들이 무언가 인위적이거나 압도하는 풍경이 아니라 어딘가에서나 마주칠 수 있는 평범한 풍경인 것이 좋았습니다. 그 평범한 모습이 처음부터 편하게 영화에 집중할 수 있었던 매력이라 생각합니다. 감독의 인터뷰를 보니 의성과 군위 일대에서 촬영을 했다고 하던데, 재하가 옛 여자친구를 배웅하던 역이 화본역이여서 영화 보는 중간에 어렴풋이 어느 지역에서 촬영을 했는지 알 수가 있더군요.
배우들의 연기도 과하지 않고 모자람 없이 딱 이 영화에서 원하는 모습을 보여 줬던거 같습니다. 류준열은 정말이지 지금이라도 의성이나 군위 쪽에 가면 농사를 짓고 있을 젊은 귀농인의 포스가 느껴지더군요.
아, 풍경 말고 또 좋았던게 혜원의 시골집입니다. 보는 내내 그 포근함과 아담함에 시선을 빼앗겨 버렸습니다. 특히나 내부 구조가 아주 마음에 들던데요? 혜원의 엄마가 주방에서 요리를 하는 중간에 주방 큰 창문 밖 시골 풍경이 계절별로 변하는 모습이 액자를 보는 듯 아름다웠습니다.
이 영화를 보고나서 사람마다 느끼는 힐링의 포인트는 좀 다를거라 봅니다. 누구는 혜원이 만드는 음식일 수도 있고, 누구는 등장인물들의 변화하는 모습일 수도 있을 겁니다. 저는 그 포근하고 파릇파릇하고 풋내 나는 듯한 풍경들을 보면서 힐링이 되었답니다.
분명 사람마다 호불호가 갈릴거고, 이런 코드가 맞이 않는 사람들이 훨씬 많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아주 작품성이 뛰어난 영화라고 하기도 힘들 겁니다. 하지만 소란스럽고 억지 웃음 강요하는 그런 영화와는 분명 다릅니다. MSG 넣지 않은 자연주의 요리 같다고나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