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 간다 (One Fine Spring Day, 2001)
'8월의 크리스마스'의 허진호 감독의 두번째 작품. 사랑의 시작과 끝을 보여주는 영화.
사운드 엔지니어 상우(유지태)는 자연의 소리를 채집해 들려주는 지방 라디오 방송국의 PD인 은수(이영애)와 함께 일을 하면서 자연스레 가까워진다. 그러다 어느날, 은수의 아파트에서 함께 밤을 보낸 후 두 사람은 계절이 바뀌듯이 빠르게 사랑에 빠지게 된다. 은수는 이혼한 경험이 있는 연상녀. 결혼을 염두해 두고 있는 상우의 생각을 부담스러워하며 둘 사이는 삐걱거린다. 결혼을 부담스러워하는 은수와 그녀에게 깊이 빠진 상우. 그리고 둘의 갈등. 급기야 둘은 헤어지게 된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냐는 상우의 말에 은수의 헤어지자는 단호한 한마디로.
겨울에 만나 가을이 오기 전에 헤어지게 되고, 다시 계절이 돌아 봄, 둘은 다시 만남을 가진다. 하지만 둘은 각자의 길을 가게 된다.
서두름 없이 잔잔한 모습으로 사랑이 시작되고 헤어지고 감정이 매듭지어짐을 보여준다. 시작과 끝이 너무나 간결하다. 하지만 그 속에 담긴 감정은 누구나 아련히 느낄 수 있다. 상우의 말처럼 사랑은 변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은 변하기 마련이다. 그것이 훗날 좋은 영향을 줄지 아니면 그렇지 않을지는 스스로가 느껴야 할 것이다. 적어도 그걸 상우는 느낀듯 하다.
사람들은 늘 현재를 미래까지 연장시키려 한다. 미래는 절대 현재의 연장선이 아니다. 미래를 보기보단 현재에 대처할 방법을 지혜롭게 찾는 방법이 더 좋을 듯하다. 지금 사랑을 하고 있을 땐 사랑하는 방법을, 헤어짐을 겪고 있다면 헤어지는 방법을. 절대 거부할 수는 없다. 물론, 늘 좋은 쪽으로 나아가는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유지태를 볼 때마다 느끼는 건데 아다치 미츠루의 만화에 나오는 전형적인 남자 캐릭터를 보는 듯하다. 특히나 이 영화에서 나오는 머리모양을 할 때는 더 그렇다.
아무래도 남자긴 남자인 모양이다. 은수보다는 상우가 더 공감가니 말이다. 어려운 일이야.
초록물고기 (Green Fish, 1997)
이창동 감독의 1997년 작품. 제대 후 건달 생활을 하게 되는 한 인간을 보여주며 암흑가의 충성과 배신, 그리고 몰락에 대해 그렸다. 대종상 영화제와 쳥룡영화제 등 그해 우리나라 각종 시상식을 휩쓴 영화.
제대 후 집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건달들에게 봉변을 당하고 있는 미애(심혜진)를 구해주는 막동(한석규)은 미애의 도움으로 폭력배 두목인 배태곤(문성근)의 밑에서 일을 하게 된다. 처음에는 주차장 관리 일을 하다가 배태곤에게 신임을 얻어 정식 조직원이 되어 배태곤을 형님으로 모시게 된다. 건달답지 않게 때묻지 않은 막동에게 호감을 가지는 미애, 막동 역시 미애에게 호감이 있으나 형님의 여자이기에 머뭇거리기만 한다. 그러던 중, 배태곤이 예전에 형님으로 모셨던 김양길(명계남)이 나타나 배태곤의 조직을 괴롭히기 시작한다. 그로 인해 배태곤의 조직은 와해되기 시작하고, 김양길의 앞에서 굴욕을 당하는 배태곤을 보고 막동을 김양길을 죽이기로 결심한다. 결국 김양길을 죽인 막동은 두려움에 배태곤에게 전화를 하게 되지만 배태곤에게 죽임을 당하게 된다.
남자라면 누구나 그렇겠지만 막동 역시 제대가 속 시원한 것은 아닌듯 했다. 홀어머니와 몸이 불편한 큰 형님을 모시고 있는 현실이 답답했을 것이다. 그런 어머니와 큰 형, 타락한 경찰인 둘째 형, 계란 장수인 셋째 형과 다방 종업원인 동생. 그가 선택할 수 있는 폭은 그다지 넓지 않았으며 그러기에 아마도 그가 그렇게 폭력배로 생활하는데 갈등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막동의 꿈은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작은 식당이라도 하는 것이라고 했다. 예전의 행복했던 가족으로 돌아가길 바랬던 것이다. 그런 막동은 자신처럼 밑바닥에서 꿈 하나만 믿고 지금의 위치에 있는 배태곤이 동망의 대상이었는지 모른다. 그러기에 그에게 충성을 했을 것이다. 사랑도 뒤로 미루고 말이다. 하지만 세상은 그런 순수한 충성심 만으로는 살아가기 힘든 곳인가 보다. 결국은 믿었던 배태곤에게 죽임을 당하니 말이다.
원망, 분노, 후회, 슬픔...이 모든 눈빛을 죽어가는 막동은 배태곤에게 보여준다. 하지만 결국 그것도 단지 유리창 저 너머에서 마지막 숨을 뱉는 막동에게만 의미있는 것일 뿐이다. 그렇게 막동은 죽어간다.
막동이 어둠 속에서 그토록 바라던 것은 아마도 초록색 세상이었을 것이다. 초록색 나무, 초록색 지붕, 초록색 들판, 그런 순수했던 시절.. 결국 그는 그런 꿈을 이루진 못했지만 그의 가족은 그렇게 살아간다. 그것이 과연 죽은 막동에겐 의미가 있는 것일까? 그가 죽음으로써 그의 가족들이 그가 꿈꾸던 대로 살아가는게 말이다.
크래쉬 (Crash, 2004)
기본적으로 민족우월주의에 입각한 인종 간의 갈등과 그에 따른 커뮤니케이션의 혼란으로 겪는 어려움 등 어쩌면 사회에 구성되어 꼭 갖추어야할 기본적인 것에 의해 문제는 시작된다. 보는 그대로 생각한다면 그건 단순히 인종 간의 이해관계에 의한 문제라고 볼 수도 있는 것이고 본질적으로 들어간다면 동질성을 가진 한 사회에서 살아가는 모든 수단에 적용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문제의 해결방법은 정말로 쉽다. 이해와 사랑.
사실 영화 자체가 가지고 있는 메시지는 같은 주제를 다룬 다른 영화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건 그 문제의 해결 방법을 모두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은 그러한 문제와 그 해결 방법을 이끌어 내는 일련의 과정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면에서 보면 난 영화 보는 내내 집중력을 잃지는 않았던거 같다. 그 한국인 부부를 보면서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