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종 드 히미코 (メゾン·ド·ヒミコ: Mezon Do Himiko, 2005)
평범한 대학생 츠네오와 다리가 불편한 소녀 조제의 가슴 시린 사랑 이야기를 그렸던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만들었던 이누도 잇신 감독과 와타나베 아야 각본의 2005년도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선 장애인의 사랑을 그렸다면 이번 영화에선 게이의 사랑을 그렸다. 아, 물론 게이만 있는건 아니고. 핫튼 전작과 마찬가지로 흔히 사회에서 비주류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의 이야기.
여주인공인 사오리에겐 어릴 적 어머니와 자신을 버리고 게이바를 운영하던 게이인 아버지가 있다. 그 아버지는 게이바를 정리하고 한적한 바닷가에 '메종 드 히미코'라는 실버 게이타운을 운영하며 살고 있었다. 어느날 아버지의 연인이라고 하는 젊은 남자가 찾아와 그곳의 일을 도와달라고 부탁한다.
실버 게이타운이라고 했듯이 '메종 드 히미코'에는 늙은 게이 할아버지(?)들이 생활하는 곳이다. 주변의 따가운 시선은 애써 무시하면서 자기들끼리 위로하고 의지하며 생활하는 곳이다. 어머니와 자신을 버린 게이 아버지를 혐오하지만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그 곳에서 일을 한다. 처음에는 그곳에서 생활하는 게이 할아버지들에게 거부감을 보이기도 하지만 그들과 차츰 생활하면서 그들에게 적응해 간다.
사랑이라는 행위에는 정해진 형태나 모습은 없는 것 같다. 연인간의 사랑이나 부모, 자식간의 사랑이나 말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동성간의 사랑이라는 것에는 거부감을 나타낸다. 하지만 그들의 사랑도 단지 사랑의 또 다른 모습일지도 모른다. 뭐, 동성애자는 아니지만서도 흔히 말하는 그 느낌이란 것이 서로간에 생긴다면, 그래서 행복할 수 있다면 그다지 나쁘다곤 생각 안 든다.
그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서도 정작 하기 어려운 것이 보이는 그대로 믿는게 다는 아니란 것이다. 늘 알면서도 막상 자신에게나, 혹은 가까운 주변에 믿지 못할 일이 생기면 거부감이 들기 마련이다. 동성애도 그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냥 모두 단지 사랑이라는 이름의 행위를 하는 것 뿐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어떤 사람들은 그들을 우리와는 마치 다른 생물 보듯이 한다. 그들도 원하는 것도 있고, 행복하고 싶은 욕망도 있고, 그런 인간인데 말이다.
그냥 단지 동성애자들의 이야기로 치기엔 너무 아까운 것 같다. 넓게 봐서 사랑에 관한 이야기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자. '조제...'를 보고 느꼈듯이 말이다.
갠적으로는 '조제...'가 더 호감이 가는 영화 같다. 이 영화도 그다지 나쁘지는 않았지만 대부분의 흐름을 이끄는 유머스러운 상황은 자칫 이들의 모습이 가벼운 것으로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는게 아닐까하는 걱정도 한다. 분명 생각할 여지가 많은 주제인데 말이다. 물론 굳이 무겁게 이끌어 나갈 필요는 없지만서도 '조제...'처럼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의 전달이 아쉬웠을 뿐이다.
그래도, 루비는 가장 맘에 드는 캐릭터였다. ㅋㅋ
그녀에게 (Talk To Her, Hable Con Ella, 2002)
스페인의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2002년 작품. 제75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2003) 각본상, 제60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 (2003) 외국어 영화상, 제28회 LA 비평가 협회상 (2002) 감독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식물인간이 되버린 두 여인을 사랑하는 공통점을 가진 베니뇨와 마르코을 중심으로, 서로 다른 사랑의 방식과 두 사람간의 우정을 그린 영화이다.
서로 호감을 가지고, 교감을 나누다가 사랑에 빠지고, 서로 하나가 되길 바라고...
베니뇨와 마르코의 공통점은 상당히 예민하다는 것과, 사랑하는 사람과 자신이 원하는 만큼의 교감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의 마음을 사랑이라고 부르기엔 성급한 듯 하면서도 상당히 지독한 사랑이다.
마르코와 리디아는 한번씩 사랑에 대한 상처가 있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상대방의 상처에 공감을 해서 더 가까워지기 쉬웠는지도 모른다. 아니, 결국엔 마르코만 그렇게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연극을 보면서, 음악을 들으면서 눈물을 흘릴만큼 감정이 여린 마르코는 막상 리디아가 식물인간이 되어버리자 그녀와 교감을 할 수 없고 어떻게 할 수 없는 현실을 안타까워한다. 하지만 그러다가도 결국은 그녀를 포기하고 만다. 어쩌면 더이상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포기한건지도 모른다. 단순히 포기라고 하기엔 힘들지도 모른다. 단지 더이상 나아갈 수 없는 벽에 부딪쳐 버린건지도 모를 일이다.
마르코의 사랑이 상당히 현실적이라고 한다면 베니뇨의 사랑은 지극히 이상적이다. 쉽게 말해 집착이라고도 할 수 있다. 흔히 부르는 스토커인 사람일 수도 있다. 베니뇨는 매일 창문으로 훔쳐보기만 했던 알리샤가 사고로 식물인간이 되자 그녀를 4년이나 지극정성으로 간호한다. 그러한 그의 사랑방식에는 여러가지 원인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외로움이 가장 큰 이유였겠지. 오롯이 알리샤만 바라보고 알리샤만 생각하며
알리샤와 완벽한 하나됨을 원한다. 그렇기에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었을 그 행동을, 자신이 봤던 무성영화의 남자주인공처럼 영원히 알리샤와 하나되는 방법이라 생각하고 그랬는지 모른다. 결국엔 그의 방식대로 하나됨을 선택하게 되지만 말이다.
리디아; 아직 그녀를 사랑하세요?
마르코; 안젤라와 공감할 수 있는 면이 없었어요.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은 가슴 아픈 일이죠.
리디아; 슬픈 사연이군요.
마르코; 사랑은 슬픈 거예요. 노래 가사처럼...
그리고, 남아있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살아가기 마련이다. 지우개로 말끔이 지워버리듯이 지난 것은 이미 지난 것이다. 남아있는 사람들은 다시 사랑하기 마련이다. 글쎄, 개인적으론 마르코와 알리샤가 그렇게 사랑에 빠져버린들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본다. 아니 그게 무슨 문제가 되는건가? 모두 그렇게 살아가는 것인데 말이다...
키즈 리턴 (キッズリタ ン, Kids Return, 1996)
하나비, 배틀로얄, 자토이치 등의 영화 배우로서도 유명한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1996년작 성장영화.
마사루와 신지를 중심으로 고등학생에서 사회인으로 옮겨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마사루와 신지는 소위 꼴통으로 학교에서도 유명하다. 수업 빼먹기는 약과이고, 나이 많은 선생을 놀리기도 하고 선생의 차에 불을 지르거나 음식점에서 버젓이 술과 담배를 시키고, 성인영화관을 전전하며 지나가는 순진한 학생들의 돈을 뺏기도 한다.
그렇게 아무런 목표도 없이 무료한 하루하루를 지내던 마사루와 신지는, 어느날 자신들이 돈을 뺏은 아이들이 데려온 권투선수에게 제대로 힘도 써보지 못한 채 당하게 되고, 복수를 위해 마사루와 신지는 권투를 배우게 된다.
하지만, 어느날 신지와의 스파링에서 패하게된 마사루는 권투를 그만두게 되고 그 소질을 발견하게된 신지는 계속 권투를 하게 된다. 후로 마사루는 어느날 음식점에서 봤던 야쿠자의 밑에 들어가게 된다.
그렇게 그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게 되고, 살인사건으로 인한 중간보스의 부재로 점점 조직에서 힘을 키워가는 마사루와 그 재능을 갈고 다듬어 권투로 주목받게 되는 신지는 하루하루 그렇게 살아가게 된다.
하지만 실패한 선배의 꾀임에 의해 페이스를 잃게되는 신지는 결국 권투를 포기하게 되고, 보스가 살해되고 그 일로 모인 보스들의 모임에서 특유의 거침없는 행동을 하게 된 마사루는 돌아온 중간 보스에게 버림을 받게 된다.
배달일을 하게 된 신지는 어느날 마사루를 마주치게 되고, 그들은 예전처럼 자전거를 타고 학교 운동장을 어슬렁 거린다.
신지 ; 마짱, 우리들 이제 끝장난 걸까? [マーちゃん、俺たちもう終わっちゃったのかなあ。]
마사루 ; 바보같은 자식, 아직 시작도 안 했잖아~ [バカヤロー まだ始まっちゃいねえよ。]
개중에는 마치 모든 것이 그렇게 정해진 것처럼 거침없이 나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실패하고 실수하고 깨지고, 그렇게 살아가면서 다시금 일어서곤 한다. 그러는 과정에서 우리는 같은 실수를 하지 않는 방법을 배우게 되고 그러한 과정을 성장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20대로 넘어가면서 성장을 하게 된다.
물론 신지와 마사루가 정신차리고 무언가 목표를 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저 마지막 대사를 주고 받는 그들의 얼굴에서는 빛이 난다. 그렇게 깨졌으면서도 그들은 웃는다.
그들에겐 희망이 보인다. 이제 20대 초반이지 않나?
처음에는 다카시 감독이 배우로 출연한 몇몇 영화를 봤었다. 배틀로얄의 잔혹한 선생이나 자토이치의 눈먼 장인 검객등 말이다. 근데, 내가 봤던 그가 감독한 영화에선 왠지 배우로서 느낀 그와는 또 다른 모습들이 보이곤 했다. 예를 들어 돌스 (ドル-ズ: Dolls, 2002) 에서 사랑의 감정을 그려낸 것처럼 말이다. 이 영화 역시 현실을 덤덤한 시선으로 그리긴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 글쎄, 희망이라기 보다는 어쩔 수 없이 살아가야 한다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어차피 살아야 할 것이면 희망을 가지고 사는게 나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