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보기/'01~'10

아이덴티티 (Identity, 2003)

계단 위로 올라 갈때 전 거기에 없는 사람을 만났어요. 그는 오늘도 거기에 없었어요. 저는 그가 멀리 가버렸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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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우가 심하게 몰아치는 어느 밤, 우연한 계기로 인해 한 외딴 모텔에 10명 사람이 모이게 된다.

여배우와 그의 리무진 기사, 라스베가스의 창녀, 신혼부부, 죄수와 죄수 호송 경찰, 그리고 아버지, 어머니, 아들 이렇게 세식구와 모텔 메니저..지독한 폭풍우로 모텔에 갇히게 된 이들.

의문의 살인 사건이 발생하고, 하나 둘 씩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유일한 단서라고는 죽음의 장소에 남겨져 있는 객실 번호가 적힌 열쇠. 죽음의 기운에 불안을 떨며 이들은 각자가 가지고 있는 마음 속의 불안을 드러내고 두려워한다.

한 친구녀석이 이 영화 보라고 하면서 주인공이 왔다리 갔다리 한다고 하길래 무슨 소리인지 알아듣지 못했었다. 그래서 엄청 머리 아플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보니 의외로(?) 구조는 명확했다.

이 영화의 구조는 크게 2가지이다. 하나는 주인공인 말콤 리버스와 그의 사형집행의 제심의를 논하는 공간이며 다른 하나는 주된 스토리를 이끌고 나가는 모텔이다.

하지만 모텔이 존재하는 공간은 허구의 공간, 즉 그 모텔이라는 폐쇄된 공간은 주인공인 말콤의 정신세계인 것이다. 그리고 그 모텔에 존재하고 있는 11명의 인물들은 모두 말콤 안에 존재하고 있는 각각의 인격들로써 말콤은 '다중 인격 증후군'을 앓고 있는 것이였다.

이는 에드워드가 모텔이라는 공간에 존재하는 인물들의 생일이 5월 10일로 같다는 걸 알게될때 밝혀지게 된다.

이 모텔이라는 공간은 하나의 치료 공간으로써 그 안에서 본래의 말콤은 모든 위험적 요소인 다른 인격들을 하나 씩 처치하게 된다.

말콤이 이러한 '다중 인격 증후군'을 앓게 된 이유는 아마도 불우했던 어린 시절일 것이다. 이는 영화 도입부에 나타난다.

말콤의 어머니는 창녀로, 그러한 어머니의 직업을 말콤은 싫어하고 그러한 어린 시절의 충격이 말콤을 '다중 인격 증후군'이라는 정신적 질환을 앓게 만든 원인이 된다.


강한 정신적 자극에 직면하면 어린 시절의 마음이 붕괴되어 정체성 일탈 현상이 발생하는 것 같네. 말콤 리버스에게 일어나는 현상이 바로 그런 경우라네.


말콤은 다시금 자신 안으로 들어가 남아있는 두 인격을 모두 제거하게 된다. 그리고 남는건 라스베가스 창녀 뿐...

어린 시절의 마음이 붕괴되어 정체성 일탈 현상이 발생한다던 박사의 말을 곱씹어 보면 말콤의 안에는 역시 붕괴되기 전의 어린 시절의 말콤 역시 존재하지 않을까? 이러한 기대에 부흥(?)하듯 모텔이라는 공간이 말콤의 정신세계를 말하는 것이고 그 많던 인물들이 모두 하나의 말콤 안에 존재하던 것이 하나의 반전이라면 그렇게 잘 해결된 듯 했던 일련의 과정 속에서 무심코 지나쳤던 티모시의 존재에 대해 의문이 또 다른 반전이다.

결국 수 많은 인격이 존재하지만서도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말콤이라는 인간의 근본적인 인격, 강한 정신적 충격을 받았던 그 어릴 적 말콤이 아닐까?

이 라스베가스 창녀가 마지막에 살아남은 것도 또한 결국은 어린 말콤이라 할 수 있는 티모시가 이 창녀를 처치하는 것도 창녀이던 어머니에 대한 증오를 지닌 어린 말콤이 그 수많은 인격들 속에서도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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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터싸이클 다이어리 (The Motorcycle Diaries,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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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

뜨거운 여명의 선지자여
버려진 외딴 길을 따라
그대가 그토록 사랑하는 인민을 해방시키고자

가자

우리를 치욕스럽게 하는 자, 정복자들아
우리 저항하는 마르티의 별들로 무장하고
승리를 다짐하며 죽음을 불사하나니

농촌개혁, 정의, 빵, 자유
그대의 목소리가 사방에 흩날릴 때
우리 그대 곁에 남으리
최후의 전투를 기다리며

행여 철의 파편으로 우리의 여행이 중단되거든
쿠바의 눈물로 수의 지어주기를
미국의 역사 한쪽으로 사라진
게릴라의 뼈마디 덮어주기를


:: Che Guevara, 1956

 


23살의 의대생인 에르네스토는 친구인 알베르토와 함께 포데로사라는 낡고 오래된 오토바이를 타고 4개월간 남미대륙을 여행하기로 결심한다.

"저 노인네를 봐. 너도 저 노인네처럼 그저 그렇게 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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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산층의 넉넉한 가정에서 자란 이 두 청년은 단지 젊은 혈기 하나로 대륙횡단을 감행한다. 그러나 여행 중에는 뜻하지 않는 사고와 여러 어려움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에르네스토는 여행 중 우연히 한 병든 할머니를 만나게 되고, 그녀를 위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신과 현실에 대해 실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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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날의 여행은 아름다운 자연경치와 더불어 낯선 곳에서 낯선 아름다운 아가씨와의 로맨스 같은 낭만만이 존재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사막을 횡단하던 중 우연히 밤을 같이 보내게 된 페루 원주민들에게 그들의 불합리한 현실에 의한 삶을 듣게 되고 깊은 상념에 빠지게 된다.

- 저희는 가족들을 남겨두고 일거리를 찾아 떠도는 중입니다. ...두 분도 일자리를 찾고 계신가요?
- 아니요, 그런 목적이 아닙니다.
- 아니라구요? 그럼 여행하는 목적이 따로 있나요?
- ...그냥 여행 중이예요..
- ...신의 은총이 함께하길 빌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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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략과 약탈에 의해 파괴된 남미의 옛 문명의 흔적들 앞에서, 그리고 여전히 심한 차별과 고단한 현실 속에서 하루 하루 살아가고 있는 남미인들 앞에서, 에르네스토는 남미의 현실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을 점점 알아가게 된다.

"형, 지금 제정신으로 하는 소리야? 총 없는 혁명은 성공 못해."


이들은 남미 최대 나환자촌인 산 파블로에 머물며 나병환자들에게 대한 잘못된 행동들을 무시하며 그들을 진심으로 대하고 이러한 이들의 행동에 이 곳의 의료진과 환자들도 점차 감동받게 된다.

- 저기 강물 본 적 있어?
- 물론이지.
- 저 강물이 건강한 사람들과 병자를 갈라놓고 있어.

 

여행을 하면서 마주친 현실에 실망하고 고민하다가 이 곳에서 지내며 에르네스토는 현실에 맞서 자신들이 해야할 일이 무엇인가를 깨닭게 된다.

떠나기 전 날 밤, 자신의 24살 생일날 에르네스토는 병자를 가로 지르고 있던 강을 홀로 수영을 하며 건너게 된다. 도중에 지병인 천식으로 호흡이 힘들게 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강을 건넌다. 오로지 이 불합리하게 놓여 있는 강을 자신만의 의지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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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그다지 정치적인 인간이 아니여서 게바라의 정치적 이념과 쿠바 혁명 그 속에 담긴 정신 따위는 그다지 관심 없다.

물론 그가 쿠바와 나아가 남미에 끼친 의미는 무시되어선 안 될 것이다. 어쩌면 그러한 것을 이해하는 것이 게바라 열풍의 거품을 제거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멋드러진 시가 피우는 모습이나 별 달린 베레모나 아니면 신격화된 이야기에 관심이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젊은 나이에 현실을 바라보는 시각을 확실히 만들어 자신의 신념대로 '스스로를 움직였다'는 것,

모순을 바로 보고 그것을 바로 잡기 위해 무엇인가를 했다는 점,

그러한 청년 게바라의 모습이 내겐 더 매력적이다.


이 영화 작년 이맘 때 봤었고 이 영화의 모티브가 된 게바라의 '라틴 여행 일기' 역시 작년 이맘때 다시 봤었다.


글쎄... 작년 이맘 때 나 역시 무엇인가를 해야하고 그러기 위한 결심이 필요하다고 스스로 생각을 했지만 또 한 편으로는 그런 것이 너무 늦은게 아닌가 하는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었는데,

그러한 것을 벗어나 내가 앞으로 어떤 마음 가짐으로 어떻게 해야하는가

이러한 고민에 답이 되지는 않을까해서 게바라에 대한 서적과 영화 등을 다시금 봤었더랬다.

하하.. 근데 일년 정도 지나서 다시 이 영화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생각해도 우스운 일이다.

'라틴 여행 일기'에 나왔던 한 chapter의 제목처럼,

나의 여정을 자유롭고 꾸밈없이 만들어가고 있을까?

 


                                                                                The Motorcycle Diaries 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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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의 뱀 (A Snake Of June, 六月の蛇,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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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덴동산 이후로 뱀은 악, 부정한 것, 요물 등의 이미지로 사람들에게 각인되어져 왔다. 뱀의 그 미끈한 비늘과 몸놀림을 보자면 흡사 여자의 몸짓, 그것을 보는 듯하다. 꺽임없이 흐느적 거리는 그 유연한 몸짓. 그런데 왜 하필 6월의 뱀인가?
6월은 일본과 우리나라에 오호츠크해기단과 남태평양기단이 만나 생기는 장마철이다. 장마철. 쉴새없이 내리는 비의 비릿함과 눅눅함, 그리고 그와는 어울리지 않을것만 같은 무더움 사이로 흐르는 끈적한 땀. 그게 바로 6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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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치료센터의 전화상담원인 린코는 중년의 셀러리맨인 시게히코와 고요하고 풍족한 삶을 사는 여자. 하지만 겉보기와 달리, 지독한 결벽증인 남편과는 부부관계조차 갖지 않는 푸석푸석하고 무미건조한 부부.

이러한 생활로 살아가는 린코는 어느날 '남편에게는 비밀'이라고 적힌 우편물을 받게 된다. 이 우편물 속에는 그녀가 남몰래 하던 자위행위가 찍힌 사진이 들어 있었다. 두려움과 수치심에 사로잡힌 그녀에게 도착한 또 다른 우편물에는 짙은 화장과 화려한 몸놀림, 그리고 역시 자위행위를 하는 그녀가 찍힌 사진과 전화기가 들어 있었다.

때마침 울리는 전화기 건너의 목소리는 자신이 시키는대로 하면 사진과 필름을 준다고 한다. 전화기 속의 목소리는 그녀에게 짧은 미니스커트를 속옷도 입지 않은채 입고서 백화점을 거닐게 하거나, 여성용 자위기구를 사게 하여 그걸 여자 몸 속에 삽입한 채로 여자에게 곤욕스러움을 주는 등의 행위를 시키고, 린코는 오직 그 사진과 필름을 받기 위해 그가 시키는대로 수치심을 억누르고 하게 된다.

린코는 결국 필름과 사진을 건네받게 된다. 하지만 전화기 건너의 목소리가 시키던 행동들이 그녀 안에 잠재되어 있던 관능을 깨우게 된다.

그녀는 결국 스스로 자위기구를 사용하여 공중화장실에서 자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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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시케히코는 어느날, 우연히 사진 한 장을 보게 되는데 그 사진 속에는 언제나 조용하고 조신하던 린코의 자위하는 모습이 담겨져 있었다. 충격을 받은 시케히코.

알지 못하는 곳에 끌려가 기괴하고 환상적인 경험을 한 후, 혼란에 휩싸이고 결국 린코의 뒤를 미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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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코는 이제 더이상 이전의 린코가 아니였다. 전화기 속의 목소리가 시키던 일련의 행동들을 수치심과 두려움에 떨며 하던 그녀가 아니였다. 그녀는 이제, 자연스레 속옷을 입지 않고서 짧은 미니스커트를 입고 당당히 백화점을 돌아다니며 공중화장실에서 자위기구로 자위를 하며 심지어 사람들이 지나가는 대로변 골목에서도 과감하게 자위를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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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코를 뒤쫓던 시케히코는 외진 공터에 있는 그녀와, 급히 다가와 멈춰선 자동차를 몰래 보게 된다. 자동차가 멈추자 마자 린코는 어김없이 손에 쥐어진 자위기구의 리모컨을 켜고 온몸으로 욕망을 발산하게 된다. 자동차에선 쉴새없이 플래쉬가 터지고 린코의 관능적인 몸짓에 시케히코도 자위를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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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 속에서 옷을 다 벗어 던지고 마음껏 감각과 쾌락에 빠져드는 린코의 몸짓은 추하거나 천박하게 보이는게 아니라 한마리 자유로운 새의 움직임과 같다.

무미건조하고 삶의 낙이 없는, 마른 나엽처럼 푸석푸석한 대지에 단비가 내리듯이 그녀의 몸짓은 생기 넘치고 자유롭고, 그리고 아름답다.

그래, 그건 새가 아니다. 물 속을 자유로이 유영하는 한마리 물뱀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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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시케히코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대표적인 남성상인지도 모른다.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권위적이고 단단해진 불쌍한 인간의 모습. 그런 모습은 결병증이라는 병에서도 잘 나타난다. 완벽한 깨끗함, 단정함. 그리고 그 속에 있는 슬픔... 그렇게 매마르고 단단한 껍질 속에 갖힌채 소통하는 법을 잊은 인간. 늘 많은 사람과 부대끼며 살아가면서도 정작 그들과 진정한 소통은 모른채, 가장 가까운 사람과의 소통하는 방법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무시했는지도. 빗 속에서 자위하는 린코를 보며 역시 자위하는 시케히코의 모습이 측은해 보이는 것은 지금까지 갇혀 지낸, 단단하고 매마르고 의미없는 껍질을 벗는 자유의 몸짓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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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코는 남몰래 하던 자신의 은밀한 몸짓, 그 행위가 찍혔다는 사실에 두려워하고 수치스럽고 치욕감을 느꼈지만, 빗 속에서의 린코는 더 이상 자신을 감추지 않는다. 자신 안에 잠재되어 있던 욕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만큼 자신에게 큰 자유를 준다. 더 이상 린코는 카메라를 피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는 자신있는 모습으로 그녀의 자유의 몸짓과 알몸을 당당하게 카메라에 맡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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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있게 보여줄 수 있다는 것. 이는 비단, 욕망이란 것에 국한 되는 것은 아니다. 자아, 마음의 상처, 감추고 싶고 부정하고 싶은 모습까지 모두 포함한다. 린코는 유방암에 걸려 한 쪽 유방을 절단할려고 한다. 그러나 시케히코는 유방 한 쪽이 없어진다는, 권위적인 남성의 미의 기준에 걸리는 행위를 부정한다. 하지만 그런 시케히코 역시 그 비내리는 밤, 스스로의 껍질을 깨고, 진정으로 중요한 것을 느끼게 된다. 그리하여 진정으로 린코와 관계를 가질 때, 절단된 그녀의 한 쪽 유방에 입을 맞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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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절된 채, 자신만의 매마른 껍질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비는 그 껍질을 약하게 하여 깨버리게 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된다. 시케히코와 린코가 진정으로 부부로써의 소통하는 법을 행할 때, 그들의 모습이 아름답게 보일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그들이 자유로워지고 그들의 영혼이 촉촉해 졌기 때문이겠지?

6월의 빗 속에서 허물을 벗어 던지는 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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