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절 주절~

20180317

토요일 저녁,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 나와 있다. 금요일 하루종일 출장에 새로 온 직원을 환영하고 떠나가는 직원을 보내주는 회식자리가 있어 월요일 출장 준비를 다 하지 못해 나왔다. 나와 비슷한 이유로 나와 일하던 같은 팀 과장도 일찌감치 들어가고 혼자 사무실에서 일하고 밥먹고 놀고 있다. 아니, 노는거 보다는 시간을 떼우고 있는게 맞는거 같다. 

40이 되니 그동안 터지지 않았던 많은 것들이 보이고, 느껴지고, 실감을 하고 있다. 그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게 없다는게, 이 사실을 지금 깨닿는게 늦은건지 빠른건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도 답답하고, 답답한건 마찬가지인거 같다. 그런 이유로, 무겁고 숨막히는 집안의 공기가 싫어서 외면하고 있다. 


[연봉협상 시작]

1차 연봉협상이 시작됐다. 실장은 일단 회사의 방침을 들려주고 나의 이야기를 들었다. 회사 입장은 충분히 이해가 가는 면도 있지만 나의 입장에서도 쉽게 받아들기 힘든 부분도 있어서 일단 나의 이야기를 전했다. 어차피 실장도 최종 결정권자의 입장은 아니고, 또 나를 이해한다고도 하지만 잘 모르겠다. 다시 협상이 시작 될거고 그 자리에서 내가 전할 나의 입장도 어느 정도 준비가 되어있다. 결국 갑과 을이라는 입장은 변함이 없을거고, 서로가 어떤 결과를 가지고 갈지는 두고 볼 일이겠지. 그 때가 되면 다시금 생각을 해 봐야겠다. 아직은 모르겠다. 


[새로운 업무]

새로운 지역을 맡게 되었다. 사실 지금도 4지역을 담당하고 있어 조금은 벅차긴 하지만, 기존에 담당하고 있는 지역과 같은 곳이고, 이런 저런 것들을 따져보고 팀장과 이야기 하고서 결국 내가 담당하기로 했다. 금요일에 현장에 방문하여 미팅도 했다. 짧은 기간에 진행될 일이기에 잘 마무리 되어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비록 몸과 마음은 좀 고단하겠지만 말이다.


[담배]

다시 피기 시작했다. 한 2년 정도는 안 폈던거 같은데 말이다. 담배를 피우나 안 피우나 답답함은 가시질 않는다. 용기도 나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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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절 주절~

아무 것도 없다

아무것도 준비가 되어 있지 않고, 아무것도 할 수도 없다.
비록 지금의 나는 이렇지만, 언젠가는 지금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많은 것을 할 것이며, 행복한 나만의 세상을 가질 수 있을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냥 다 헛된 바람인 것을.
그것도 너무나 늦게 알게 되었다. 그 중에 단 하나라도 가질 수 없다는 걸 너무 힘들게 알게 되어 버렸고, 상처를 주었으며,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음에 비참하고 비참하다.
단 하나라도 있다면...
모든 걸 가지고 있지도 않았고 모든 걸 가질 수도 없고, 아무 것도 아님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미련 때문에, 욕심 때문에 소중한 마음에 상처를 아로 새기게 되었고, 내가 그걸 오롯이 짊어 진다고 해도 영원히 지울 수는 없다.
비참하고 비참하다. 그래도 그래도 희망 하나쯤은 있겠지, 오늘까진 그랬어도 내일부터는 달라지겠지, 다 의미없는 몽상이고 그 꿈에서 깨니 웃음만 남는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마지막까지 난 상처만 남겨 주는구나.
네가 없는 내일이 무서워서 잠들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내 미련이 영원히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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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보기/'11~'20

리틀 포레스트 (Little Forest, 2018)

간만에 마음 푸근해지고 뭔가 힐링이 되는 듯한 영화를 봤습니다. 사실 이 영화는 사전 정보 없이 봤는데, 생각보다 만족했습니다. 원작이 일본 만화여서인지 어딘가 모르게 일본 영화의 느낌이 나다가도 10분 정도만 차를 타고 가면 어디에서도 볼 수 있는 듯한 풍경이 익숙해서 좋았습니다.

하염없이 눈이 내리는 겨울날, 임용고시에서 떨어진 혜원은 아무도 없는 어릴 적 살던 시골 집으로 오게 됩니다. 잠시 머물다가 갈 생각으로 왔지만 예전 친구 재하, 은숙과 만나면서 4계절을 보내고, 그 과정 속에서 예전에, 그리고 지금 마음 속에 있던 상처와 굴레를 벗어 던지게 됩니다.

한없이 청명한 김태리의 모습과 어딘지 모르게 구수함이 느껴지는 류준열의 모습에서 돈 많이 들인 블럭버스터나 심각한 감동을 주는 영화는 아닐거라 생각했고 그냥 가볍게 보면 될거라 생각을 했었습니다. 생각대로 가벼운 영화였습니다. 아니 가볍다기 보다는 은근히 오래 향기가 느껴지기도 하고 잔잔한 물결이 조용히 멀리 퍼져 나가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게 되는 그런 느낌의 영화였습니다.

영화 내내 보여주는 혜원이 살던 동네의 4계절 모습들이 무언가 인위적이거나 압도하는 풍경이 아니라 어딘가에서나 마주칠 수 있는 평범한 풍경인 것이 좋았습니다. 그 평범한 모습이 처음부터 편하게 영화에 집중할 수 있었던 매력이라 생각합니다. 감독의 인터뷰를 보니 의성과 군위 일대에서 촬영을 했다고 하던데, 재하가 옛 여자친구를 배웅하던 역이 화본역이여서 영화 보는 중간에 어렴풋이 어느 지역에서 촬영을 했는지 알 수가 있더군요.

배우들의 연기도 과하지 않고 모자람 없이 딱 이 영화에서 원하는 모습을 보여 줬던거 같습니다. 류준열은 정말이지 지금이라도 의성이나 군위 쪽에 가면 농사를 짓고 있을 젊은 귀농인의 포스가 느껴지더군요.

아, 풍경 말고 또 좋았던게 혜원의 시골집입니다. 보는 내내 그 포근함과 아담함에 시선을 빼앗겨 버렸습니다. 특히나 내부 구조가 아주 마음에 들던데요? 혜원의 엄마가 주방에서 요리를 하는 중간에 주방 큰 창문 밖 시골 풍경이 계절별로 변하는 모습이 액자를 보는 듯 아름다웠습니다.

이 영화를 보고나서 사람마다 느끼는 힐링의 포인트는 좀 다를거라 봅니다. 누구는 혜원이 만드는 음식일 수도 있고, 누구는 등장인물들의 변화하는 모습일 수도 있을 겁니다. 저는 그 포근하고 파릇파릇하고 풋내 나는 듯한 풍경들을 보면서 힐링이 되었답니다.

분명 사람마다 호불호가 갈릴거고, 이런 코드가 맞이 않는 사람들이 훨씬 많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아주 작품성이 뛰어난 영화라고 하기도 힘들 겁니다. 하지만 소란스럽고 억지 웃음 강요하는 그런 영화와는 분명 다릅니다. MSG 넣지 않은 자연주의 요리 같다고나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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