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저 (Closer, 2004)
하늘이 정해준 인연이 따로 있다고는 생각 안 한다. 어느 것도 정해진 것은 없다고 본다. 우린 그 누구라도 만나서 인연을 맺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세상 사람 모두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그 셀 수 없는 끈들 중에서 유독 빛나는 끈을 잡고 그 끈이 연결된 곳을 바라 봤을때 거기 있는 낯선 누군가와 인연을 맺고... 끈이 매듭지어져 있다면 그걸 풀기 위해 그만큼 서로 힘들겠지... 혹은 그것을 참지 못해 포기할 수도 있겠지... 그렇다고 절대 끊을 수는 없는 것, 어쩌면 그것이 가장 서글픈 일인지도 모른다...
Hello Stranger...
세상 사는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사랑 역시 다른 사람과의 관계이기에 그에 따른 책임이 있다. 일방통행이 아니야... 혼자서 행복해지기 위한건 절대 아니야....
:: 날 정말 사랑하는거야?
:: 널 영원히 사랑해, 상처주기 싫어.
:: 그런데 왜...
:: 내가 이기적이라 그래. 그녀와 있는다고 행복할거 같진 않아.
:: 당연하지, 날 그리워할거야. 아무도 나만큼 당신을 사랑하진 못할거야.
행복할거 같지 않다면서 상처를 주는 것은 뭔지...
외로웠을까? 가까우면 가까워질수록... 그럴수록 낯선 무언가를 느꼈을까?
이 장면에서 난 여자가 되기도 했고 또 남자가 되기도 했다.
여자...어쩌면 몸에 더 집중하는 남자의 방식이 싫었는지도 모른다. 단지 관계를 그런 식으로만 생각하는 남자가 지긋지긋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걸 떠나서 이미 남자에겐 더이상 기대할 무엇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름대로 책임을 다 할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과연...자신이 원한 그 무언가를 다른 남자에게서 찾았을까? 아직도 사랑한다면서, 그런다면서 다른 남자와 관계를 맺고 헤어지길 바라는건 뭐지? 나름대로의 책임을 지는 방법? 그건 책임을 지는게 아니라 도망가는 것이 아닐까?
그리곤 외로워졌다... 저들도 외로웠을까?
남자...생각을 해도 말로는 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말을 거침없이 한다. 뻔한 사실을, 여자의 말처럼 여느 사람들도 다 같은 방법으로 하는 것을 묻고 또 묻고 확인하고 또 확인하고, 그리고 화를 낸다. 남자가 확인하고 묻고 하는 것은 자신과의 관계 때보다 여자가 더 몰입하여 그 순간에 자신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상대방에게 몰입되었을 여자, 그렇게 여자에게서 자신이 지워졌다는게 견디기 힘들었던건 아닐까? 하지만...남자, 내가 보기엔 저럴 자격 없다. 그 역시 여자와의 관계에 책임을 지지 못해다는 것이다. 솔직했다고? 그건 단지 자기 합리화의 변명일 뿐이다... 변명일 뿐이야...
:: 널 사랑해.
:: 어디서?
:: 뭐라고?
:: 보여줘봐. 사랑이 어디있는데? 볼 수도 만질 수도 없어. 들을 수도 없어. 물론 말은 들리지만. 네가 쉽게 뱉는 말로는 아무 것도 어쩔 수 없어.
남자의 태도에, 진실을 말하면 어떻게 될지 뻔할 거라던 남자의 반응에... 자신만큼 사랑해 줄 사람은 없다던 여자... 남자를 이해시키기 보다는 단정하고 그리고 결정한다. 그리고...
아...모르겠다... 다른 남자와 잤다던, 자신도 원했다던, 느꼈다던... 그 모든 여자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난 잘 모르겠다... 단지... 끈이 원래부터 꼬여있었나 보다...
모두 지독하게 외로운 사람들이고 지독하게 비겁하고...
자신의 행복에 책임조차 지지 못하는...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런걸... 어느 누가 난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 나도 저럴까.. 나도..저런가..
간신히 정리된 머리와 마음이 다시 복잡해 졌어...
상당히 공감되어 섬뜻했고 마음 아펐고 그러면서도 절대 이해할 수가 없는...
흐르는 강물처럼 (A River Runs Through It, 1992)
완전히 이해는 못해도 완벽한 사랑을 할 수는 있다...
노만과 폴은 몬타주 강가의 교회에서 살면서 낚시를 종교와 같을 정도로 소중하게 생각하고 즐기는 장로교 목사인 아버지와 어머니의 두 아들. 송어를 낚는 제물낚시꾼(Fly-Fisherman)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그의 아들들도 어려서부터 낚시를 좋아한다.
노만은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하고 폴은 고향에서 신문기자로 일하면서 낚시를 인생의 목표처럼 삼으며 살고 있다. 고향으로 돌아온 노만은 폴과 낚시를 하면서 폴의 낚시실력을 예술이라 생각하며 시기와 동시에 부러움을 가진다.
노만은 우연히 제시라는 여자를 알게 되어 사랑에 빠지고 자유분방하고 활동적인 폴은 도박에 빠져 빚을 지게 된다.
노만은 시카고대학에서 강의제의를 받게 되고 이들 세부자는 노만이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낚시를 하러 간다.
신기에 가까운 낚시실력으로 대어를 낚게 되는 폴. 이들 부자는 간만의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된다.
노만이 시카고로 떠나기 전, 폴은 살해되어 길가에 버려진채 발견되고 그의 부모들은 상심하며, 그렇게 노만은 고향을 떠나 시카고로 향한다.
우리는 누구나 생에 한번쯤은 사랑하는 사람이 불행에 처한 걸 보고 이렇게 기도합니다.
"기꺼이 돕겠습니다. 주님!" 그러나 필요할 때 사실 우리는 가장 가까운 사람을 거의 돕지 못합니다.
무엇을 도와야 할 지도 모르고 있으며 때로는 그들이 원치 않는 도움을 줍니다.
이렇게 서로 이해 못하는 사람과 산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 해도 우리는 사랑할 수는 있습니다.
완벽한 이해 없이도 우리는 완벽하게 사랑할 수 있습니다.
:: 아버지의 마지막 설교
사랑하는 이들이 모두 떠나고 자신 역시 인생의 마지막 길에 들어선 노만은 그 모든 이들을 이해하지도 못한채 떠나보냈지만 아직도 그들을 사랑하고, 여전히 그들과 함께하고 있음을 그의 인생을 지배하던 그 모든 것들이 흘러 모두 하나됨을 느끼며 여전히 그 강에서 낚시를 하고 있다.
돌이킬 수 없는 (Irreversible, 2002)
시간은 모든 것을 망가뜨린다...
정말로 시간이 모든 것을 망가뜨리는 걸까? 원래 그렇게 되도록 정해진 것은 아닐까? 단지 그러한 결과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힘 없는 존재들의 변명 밖에 지나지 않는게 아닐까? 그만큼 시간 앞에서는 힘 없다는, 혹은 누구에게나 시간은 냉정하다는 것 아닐까?
사실, 솔직히 이러한 결과를 굳이 마르쿠스나 피에르에게 물을 필요는 없다고 본다. 마르쿠스가 조금만 더 알렉스에게 신경을 썼더라면, 아니면 피에르가 그렇게 가버리는 알렉스를 잡거나 바래다 줬더라면... 이러한 생각을 한다면, 그 잘잘못의 끝은 절대 찾을 수 없다고 본다. 이미 그렇게 되어버렸기에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그 누구에게도 없는게 아닐까?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이미 그렇게 되어버린 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냐는 것이다.
이 둘은 단지 그들 나름대로 그것을 받아들인 것 뿐이다.
두 말할 필요없이, 초반부에 피에르가 머리통이 깨져 으스러지도록 복수를 하는 장면과 더불어 가장 충격적인 장면이 아닐까? 9분여의 긴 시간동안 끊김없이 한 여자가 처참하게 강간당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저 장면은 단지 그 끔찍한 모습 뿐만 아니라 그 이면에 담긴 사회의 가장 진부한 시스템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게 해 준다. 여자와 남자로 대변되는 치자와 피치자, 혹은 힘 있는 자와 힘 없는 자가 한 공간에 공존하고 있는 저 기괴한 장면은 그러한 관계들 간의 대립 자체가 무의미 함을 보여주는 듯하여 씁쓸한 맛을 준다. 그와 더불어 남자가 여자를 거칠게 강간하는 도중에 그걸 목격하고도 아무 말 없이 돌아서는 한 인간의 모습과 저 지하도는 바로 우리가 지금 살아가는 이 곳을 적나라게 보여주는게 아닐까?
옛 연인, 여자 그리고 현재의 연인 이렇게 셋이 대화를 나누는 이 장면은 상당히 불쾌감을 주었다. 옛 연인은 시종일관 여자에게 현재의 연인과의 성생활, 그리고 자신과의 성생활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비교하고 생각한다. 이러한 관계의 사람들이 그런 주제의 대화를 나눈다는 것 자체가 단지 서로가 서로를 공유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들게하여 상당히 불쾌하였다. 뭐...단지 내가 그렇게 느꼈다는 것 뿐이다.
불안하게 흔들리는 카메라의 시선은 보는 내내 현기증을 일으킬 정도로 어지러웠다. 그리고 그 어지러운 머리로 도대체 이 영화를 보고 무얼 느껴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시간이 모든 것을 망가뜨린다고 해서 시간을 잡을 수도 없는 것이고, 또 모든 일련의 사건이 누구의 잘못인지를 따지는 것 보다는 단지 그렇게 되어진 것이기에 그 되어진 것을 받아들이는 태도의 중요성을 말하는 것이라면, 세상에 그 어떤 남자가 마르쿠스와 피에르의 저런 행동에 욕을 하겠는가? 나? 내가 저런 경우라도 마르쿠스나 피에르처럼 그러겠는가? 절대. 왜냐면 난 절대 혼자 보내지 않으니까. 그 자극적이고 현실적인 장면에 호기심이 있어서 보고 싶었던 영화였는데 그다지 편한 마음으로 감상할 만한 것은 아닌거 같다. 굳이 나라면 어떠했을까하는 감정이입도 별 의미가 없는 듯한, 단지 끔찍한 내용의 영화를 봤다는 생각 뿐이다.